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백상님의 화산문하...

by 월반장 2010. 3. 28.

오늘도 화산문화 6권을 전부 읽었는데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 답게 읽어도 씹는 맛이 있다랄까

감칠맛이 나는 것도 있고 여운이 남는 것이 재미나다.

화산문하는 주인공이 화검상의 조상중에 백상님의 다른 작품인 곤륜삼성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

물론 성은 다른데

백상님의 작품을 잘보면 위지세가가 무황성이 되는 시기와 무황성이 무너지고 난후의 구파일방 시대 그리고 그외 세계관 이 있다.

이중 위지세가와 구파일방의 시대는 같은 세계관을

일단
영웅신화(만우문주 위지황제, 전대 문주 만우성승)
- 황제신화(만우문주 - 위지성검, 위지황제의 아들)
- 악마신화(만우문주 - 백리뭐였는 기억이.. 이 캐릭터도 위지가문의 혈육)
- 무상신화(이것은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일단 악마신화의 만우문주가 죽으면서 성검을 성취를
               도와주는 것으로 안다. 성이 동방)
- 고금제일문(만박서생) - 만우문주가 동방노인의 제자인 백xx이다. 역시 위지가문의 혈육)

일단 고금제일문편에서 주인공인 만우문주가 위지세가의 무황성의 제명을 명하고 끝나는데
백상님의 소설은 보면 주인공이 만우문주인 경우가 많고 만우문주는 성검을 익힌  사람이다. (=공검)(위지가문의 사람만이 성검을 익히나 싶지만 또 그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황성이 무너진 이후 구파일방과 천외사세였나 그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고금제일문의 주인공인 백xx만우문주의 자손이고 차대 만우문주가 나오는

무당소사숙을 시작으로 이때 부터 만우문주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아마도 만우문주로 추측되는 사람의 이름이 용화노인, 무명노인등으로 주인공의 사부나 희미한 스승정도로 나오게 된다.

구파일방시리즈가 같은 세계관으로 추측되는 이유는 이름 때문인데
 
무당소사숙의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이 동심맹의 창설자 이름을 나오는 경우(성이 같은지 다른지 모르겠다. ) 아마 이것이 화산검성일 것이다. 화산검성 다음의 시기가 곤륜문하 이런식으로 겨우 이름으 유추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작품의 연결고리도 용화노인과 무명노인으로 알 수 있는데 곤륜삼성의 주인공의 이름이 화산문하의 주인공의 조상의 이름과 같은 것을 본다면 추측하건데 아마 같은 세계관을 다룬 것이다. (성은 다르다)

이외에 성검가, 악마성검, 무명성검, 백가신화등이 있는데 이것은 무공종류만 비슷할 뿐 다른 세계관이거나 위지가문보다 훨씬 이전 시기라고 생각한다.

여튼 화산문하를 읽으면서 저런 배경설정을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좀 지루한 백상님의 스타일상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화산문하는 구파일방시기에서 등장하는 천외사세와 주인공 혹은 구파일방과 주인공, 그리고 천외사세의 시조나 그 배경이 되는 무검을 이룩한 혹은 광검을 이룩한 신선과 주인공의 다툼을 그린다.
이런설정은 구파일방시기의 백상님의 시리즈에 거의 공통적인 설정..

대략적인 스토리는천외사세와 사선이었나? 광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수천갑자의 신선들 에 의해 화산을 비롯한 정파의 심성이 괴이해지면서 그에 방해되는 화산의 전장문과 아버지(주인공 화검상의 조부와 아버지) 가 누명을 쓰고 살해당하는 배경을 시작으로 화검상이 그나머 현 장문의 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겨우 살아남아 3년간의 유폐끝에 화산으로 돌아와 활약하게 된다. 화검상은 유폐기간에 후에 용화노인으로 추측되는 노인에게 일종의 가르침을 받고 무엇인가 성격, 무공상의 각성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눈덩이 처럼 늘어나서 후에는 무공이 비약적으로 늘거나 성격이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음모의 배경이 되는 신선들은 용화노인을 매우 두려워하는데(만우문주는 무검을 이룩한 사람이 여러명 덤벼도 한수에 제압하는 성검이 기본적인 조건, 화산문하의 신선들은 광검에 머무는 낮은 경지 일반무공 -  심검-광검-도검-무검-성검(공검) 순이다.) 화검상이 3년유폐기간에 용화노인으로 추측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죽일려고 화산 및 정파의 인물들의 심령을 조작하고 사건을 일으킨다. (너무 용화노인을 두려워해서 화검상을 직접죽이거나 급작스럽게 죽이지는 못 한다.) 화검사은 조부가 남긴 영약을 먹고 내공을 급격히 키워가고 어릴적부터 홀로 생각하던 곡선적무학(이 곡선적무학은 바로 전 시기로 추측되는 곤륜삼성에서보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사용하는 무공)을 완성시켜가면서 같은 경지에서는 보다 강하고 그보다 상승의 경지의 일부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신선들과 비슷한 경지인 광검을 성취(하지만 내공의 차이가 너무나서 이기지는 못한다. 신선들은 수천갑자 화검상은 수십갑자수준)하고 천외사세외 정파의 음모를 파쇄해 나간다.
 끝에 천외사세중 천수자였나 천건자였나 그를 꺽고 동방으로 떠나게 된다.(곤륜삼성의 주인공과 아버지는 동방의 왕족출신 가만히 읽어보면 여러가지 설정이 연관된다.)



백상님의 소설은 사람을 거의 죽이지 않고 계속해서 무공을 설명하거나 상황을 되집어보는 설명이 많아서 지루한 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것에 매력을 느끼는 지라 볼때마다 재미있게 본다.
사족으로 웹서핑을 하다보면 화산문하의 리뷰나 글을 볼 수 있는데 (디시인사이드의 모갤러리에서 본 내용이 주가 되기는 한다.)... 개연성부족이니 억지설정이니 하는 말을 보면 .. 글을 제대로 보았는지 의구심이 좀 난다.
개연성부족으로 꼽히는 것이 주인공의 성격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인데 이미 첫권 극초반부터 용화노인을 만나 일종의 각성을 시작했고 특히 개연성부족으로 보는 남궁각의 여식에게 적극적으로 고백하는 부분을 보면 후반이라서 각성 후 비약적인 성격변화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을 개연성이니 억지설정이니 하는 것을 보면 .. 소설 내내 설명하던 각성과 비슷한 설정이나 무공설명이 허무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백상님의 불가적인 특성상 깨달음이란 백년의 고련끝에 오기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아침해를 보다고 나타날 수 있다는 사상적 영향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한 가지를 보자면 왜 그런 대능력자들이 화검상을 살려두었고 바로 죽이지 않았나? 라는 것인데 신선들이 화검상의 면전에 나와서는 용화노인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오히려 화검상을 도와주는 장면에서 충분히 설명된다. 게다가 정파들이 마두같이 행동하는 이유도 천외사세외 신선들의 심령적인 제압이나 개조가 있었음이 설명되고 암시하는 부분이 있는 데도 이것을 끄집어 내서 억지설정이니 뭐라고 하는건 ... (화검상의 조부와 아버지의 경우 이 심령제압, 개조가 힘들어 누명을 씌워 죽인 것) 거기에 화검상은 애초에 왜 조부와 아버지와 같이 죽이지 않았는냐 라는 것도 극초반에 그가 현 화산장문의 딸의 자식이라는 것... 후에야 신선들이 용화노인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용화노인이 모르도록 자연스럽게 죽이려고 한 것을..... 왜 같이 안 죽였느니.. 약할 때 확 죽이지 뭐하느냐 라던지, 그 대능력을 가지고 왜 진작 무림을 지배하지 않느냐? 라는 것을 보면.....꼼꼼히 정독해 보라는 말 밖에는...

이런 것이 개연성부족이니 억지설정이라면 ...도데체 어떤것이 제대로된 개연성이니 설정인지 모르겠다. 김용의 소설들?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기는 한데 만약 백상님의 저런 설정이 억지이고 개연성 부족이라면 김용님의 소설들도 다를 것이 없다. 중국무협의 특성인 캐릭들의 말과 행동이 내면의 변화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것은 저 위의 개연성부족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지? 의천도룡기의 조민, 주지약이 여인의 흔들림이나 새침치고는 너무나 변화무쌍한 말과 행동의변화 그리고 장무기를 대하는 태도변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인간내면의 변화를 잘 설명한 것이라면 왜 화산문화 주인공의 변화는 내내 설명을 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지? 이것을 역으로 보자면 중국무협에 대한 경외심이나 사대에 가까운 사관이 아닐지?) 개인적으로는 김용의 캐릭터의 언행을 풀어내는 방식이 이걸 중국식이라고 해야하나 껄끄러울 때가 있다.

결론적으로  김용의 소설과는 확실히 비교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은 인정하는데 적어도 개연성이나 억지설정이라는 범위라면 개인적으로 이해가 힘들다.
그리고
무공설정상에 오는 한계(사람을 극히 적게 죽이고 몸싸움보다 말싸움이 많은 점)는 익히 알고 있는 점이라 별루 반박할 여지는 없다.

끝으로
내가 생각하는 단점이라면 위의 무공설정상에 오는 한계인 무협소설답지 않게 사람이 죽는 장면의 거의 없고 말싸움이 많은 점 , 역시 비슷한 설정상의 문제로 오는 소설 내도록 나오는 무공설명, 개인적으로 너무 답답한 주인공의 행로(불교적인 특성이 강해서 오는 설정상의 답답함 이랄까..) 정도다.


쓰다보니 흥분한 것도 있어서 막 쓰기는 했는데 누가 이 사람도 없는 블러그에서 이 글을 본다면 어떤 면에서 개연성과 설정이 억지적인지 말해주기를...

댓글